Great Palace_Performance Video(00:28:37)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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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가능한 행위를 작업을 통해 과정기록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이는 폐기물로
더럽혀진 현 시대에서 노동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복원 하기와 재생산하기를 통해 폐기화 되지 않는 힘(에너지)을 쫓는 과정의 기록을 남긴다.” (작가 노트 中)
1960년대 20세기
최고를 풍미했던 담배사업. 전세계의 정부들은 담배사업에서 수입을 올리고 있다. 담뱃세는 각국 정부의 총수입 가운데 큰 몫을 차지한다.
산업화의 19세기를 거쳐 혹한의 20세기를 버텨온 연초제조창은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당연히 도산되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법칙과 걸맞게 쇠퇴되었고 현장은 산업화가 휩쓸고 간 거대한 공장의 뼈대와 흔적만이 남아있다. 2015년의 도시재생산업으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연초제조창. 과거 그리고 현재, 사회구조적으로 연초창이 가지고 있는 의미란 무엇일까?
과거 연초창은 생산직과 관리직의 출근 통로가 따로 나뉘어 있을 만큼 공장의 내부적인 구조 역시 계층화
되어있다. (서구에서는 일찍이 생산직 노동자가 푸른 제복을 입는다고 해서 이를 블루칼라, 이에 대해 양복 차림에 와이셔츠 차림의 관리직 사무직
종사자들은 화이트칼라로 구분하였다.) 당시 유아보육원을 포함한 기타 종교시설. 남,여 목욕탕, 의무실을 포함한 연초제조창의 생산동은 마치 이곳을
떠나지 않고도 일만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놀라운 시설을 완벽히 갖추었다. 누구나 이곳에서 일 하기를 원했을 것이고 이 달콤한 대가는 마치 노동에
대한 표창과도 같았을 것이다. 현재의 시선으로도 과거 연초제조창의 근로자는 이곳 에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졌을 법해 보였다. 당시 민방위 훈련장소로
쓰였다는 연초창은 국가에서 얼마만큼 위엄이 있던 장소였는지도 추측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근로자의 노동을 이용한 정부의 성장산업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있다. 20세기는
낡은 서구식 기계문명의 구시대적이고 노동집약적인 굴뚝산업이나 공해산업으로 발달해 왔으며 담배는 20세기의 가장 크게 성공한 업종이기도 하다. 과거
청주시 대부분의 노동력은 이곳으로 쏠렸으며 적극적으로 수용한 수많은 근로자들은 노동을 소비하고 노동의 대가를 받아갔다.
생산직의 임금은 과연 노동자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것이며 국가의 품위를 올리는 길일까? 물론 초기
경제 개발의 단계가 지나 공업화가 진전됨에 따라 생산직 노동자의 지위와 대우도 상당히 개선 되고 생산직의 중요성이 재인식 되었으나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역사시대에 노동시장이라는 특수한 사회경제 구조 안에서 임금 노동자의 월급은 육체 노동자의 삶의 질을 대변한다.
이후, 21세기 사양사업이 되어버린 담배. 소비시장의 흐름과 자동화 기계화에 따른 인력 대폭 축소로 일터를 잃은 근로자들은 노동을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이용해야 할지 갈피를 잃었다. 선진국의 석탄산업, 방직산업이 이에 대표적으로 현재 1960년대의 값싼 노동력에 맞는 섬유, 완구, 의복사업 등을
우리나라에서 취급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번 도시 재생사업에서 청주는 더 많은 인력을 수용 할 수 있는 호텔사업이나 외국인을 겨냥한 면세점
등의 관광사업에 주력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육체 노동자의
시대. 대 공장제 시대. 자본주의 시대 이 세 단어는 나란히 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서로 긴밀한 고리로 엮여있다.
과연 그 많은 근로자들은 남은 노동을 어느 곳에서 소비 하였을까?
무너진 공장의 노동이 시장노동으로 흡수되기까지.
2014년 나는 청주 육거리시장을 지나다 이색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무심코 지나는 도매가게 안에서 파를 다듬는 할머니들. 트럭에는 다듬어 버려놓은 파뿌리가 가득했고 시장 안에는 반듯하게 쌓아놓은 파들이 가득하다. 파가 원료에서 공정되고 상품화되는 모습은 마치 담뱃잎과도 흡사하다. 노동력이 점점 기계화 되어가는 시장의 흐름 속에서 손으로 일일이 작업하는 모습도 이색적이었지만 연초제조창의 크기와 함께 서로 성장 온 재래시장은 연초제조창의 노동력이 유입된 현장이라는 점이 보다 흥미롭다.
2014년 나는 청주 육거리시장을 지나다 이색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무심코 지나는 도매가게 안에서 파를 다듬는 할머니들. 트럭에는 다듬어 버려놓은 파뿌리가 가득했고 시장 안에는 반듯하게 쌓아놓은 파들이 가득하다. 파가 원료에서 공정되고 상품화되는 모습은 마치 담뱃잎과도 흡사하다. 노동력이 점점 기계화 되어가는 시장의 흐름 속에서 손으로 일일이 작업하는 모습도 이색적이었지만 연초제조창의 크기와 함께 서로 성장 온 재래시장은 연초제조창의 노동력이 유입된 현장이라는 점이 보다 흥미롭다.
'과연,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시장의 파 다듬기 사업 역시 도산 될 것인가?', '나의 움직임과 이동된 노동자간에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로 시작한 궁금증은
<동부창고와 육거리 시장의 개연성. 그리고 파>가 만나 동부창고34동 내 새로운 경제구조 만들기로 발전 된다.
나의 이야기는 인식의 변화를 거꾸로 흘러가 재발견하고, 현장으로
다시 찾아가 현재의 질문으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과정의 기록을 남긴다. (작가 노트 中)
이는 지역 환경에 기반을 둔 ‘노동, 노동자, 공장산업의 대량생산, 대량폐기’등
의 사회적 이야기를 작가의 수행적인
행위를 통해 재해석 된 퍼포먼스형식의 미디어작업이다. 연초제조창 창고동의 철거 된 건축물 틈 사이, 근처 재래시장에서 공정 후 폐기 될 파뿌리를 임의로 농작하여 다층적 노동자와
사회적 관계의 메카니즘에 대한 작가의 연구방법을 시각화 한다.
유휴공간이던 공터 내 놀이터(=Great Palace, 이하 '이곳')를 작가의 임시 작업소로 지정하는 것은 왕궁의 모습을 한 기이한 건축적 구조에서 영감이 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곳'은 기능을 상실한 과거 권력의 상징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철거 된 건축물(과거 담배창고동)의
중앙에 위치한 '이곳'은 건축물 틈 사이를 내려다 보며 관리를
할 수 있는 감시탑의 역할과 동시에 파뿌리의 발아, 성장, 분배가
체계적으로 통제되는 생산동의 역할을 한다. 작가의 모든 지시 아래 재배되는 재생 파뿌리는 매 1회 제한적인 급수 시스템을 통해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아 성장을 하는 반면
'이곳'은 퇴폐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을 더 없이 드러낸 조명과 제한 없는 안개분사시스템으로
향락을 즐긴다. 이곳은 파가 모두 자라기 이전에 퇴거조치가 내려지거나 강제 철거를 해야만 하는 불법점유 된 공간이며, 가능하지 못한 결과를 인식 한 상태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이다. (결과적으로 프로젝트가 점유 한 기간은 총 8개월이 되었다.)
※재생 파뿌리는 과거 노동자의 상징. 작가는 노동에 참여한 상위노동자이자
생산물을 관리하는 생산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폐기와 재생의 과정을 거치며 가까운 곳에서 우리에게 소비되는 물질의 변화, 버려진 공간과 공간 내 생명의 기록, 삶과 죽음을 노동자와 대비시켜
스크린 내에 제시하는 이 행위는 현대 자본주의와 대가 그리고 노동자의 의무에 대한 불일치적 생각을 담은 메시지를 재래시장과 연초제조창을 오가며 보여주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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